인사관리의 발전과정 - 미국의 경우
1800년대 미국의 기업에서는 인사관리 기능은 주로 종업원 가운데 선임자에 의해 행해졌다. 선임 종업원들은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고 이들 신참자들을 교육·훈련시키는 일을 담당하였는데, 선임종업원에 의해 채용된 종업원들은 주로 이들의 친척이거나 친구들이었다. 이 당시 종업원들은 소액의 임금에다 식사와 숙소를 제공받는 형식으로 보상을 받았다.
1911년부터 1930년까지 인사관리는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테일러(F.W. Taylor)에 의해 도입된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의 주된 관심사는 종업원 가운데 생산작업에 필요한 기술을 가진 자를 선별하는 일,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종업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일, 그리고 최상의 성과를 달성하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직무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에 의한 인사관행은 당시에 보편화되어 있던 인사관행과는 매우 대조적인 방법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작업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종업원들에게 해고의 위협을 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테일러리즈(Taylorism)에 의한 인사관행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인사관리였으나, 현대 인사관리와의 차이는 보상에 있어서 두드러진다. 테일러는 재무적인 보상을 통해 성과를 달성하려고 한 반면, 현대 기업에서는 재무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에게 안정감, 책임감, 성취감 같은 심리적인 보상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 점이다.
193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서는 인사관리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일련의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기에 Western Electric사의 호손(Hawthorne) 공장에서 시행된 'Hawthorne 연구'는 기업의 인사관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하버드대학 교수인 메이요(Mayo)와 뢰슬리버거(Roethlisberger)는 호손 공장에서의 실험연구 결과를 토대로 직무만족 같은 "사회적 요인이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유명한 "행복한 근로자가 일 잘하는 근로자(A happy worker is a productive worker)"라는 명제는 이른바 '인간관계 운동(Human Relations Movement)'의 주된 테마였으며 이 운동은 6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인간관계 운동이 인사관리에 기여한 점은 작업자의 모티베이션과 집단의 중요성, 그리고 부하직원에 대한 리더십 발휘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수행에 필요한 인력의 원활한 공급과 적격자의 선발이 군대에서 주된 업무가 되었다. 군에서 필요로 하는 개인의 관심사, 보유기술, 능력들을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심리검사(psychological tests)가 발달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심리겁사법은 기업체에 사용되어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도구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미 1913년에 미국의 심리학자 뮨스터버그(Munsterberg)는 심리학과 산업능률(Psychology and Industrial Efficiency)이라는 저서를 통해 전차 운전기사, 간부선원, 전화교환수 같은 작업에 적합한 사람들을 선발하는 실험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뮨스터버그와 같은 산업 및 조직심리학자(Industrial and Organizational Psychologists)들이 인사관리에 기여한 점은 첫째, 직무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직무수행능력을 고려한 점과 둘째, 직무수행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를 개발한 점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미국에서는 병사들을 선별하기 위한 심리검사의 일환으로 지능검사(intelligence tests)를 시행한 바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러한 심리검사들이 인사관리의 주요한 영역으로 편입되게 되었다.
인사관리는 법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인사관리와 관련된 법률의 제정은 인사관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1964년에 민권법(Civil Rights Act)이 제정되어 성(性), 종교, 인종, 피부색, 출산국가를 이유로 고용에 차별을 두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게 되었고 이후 미국기업의 인사관리는 종래의 행정적인 역할을 벗어나 고용계약의 관리, 종업원의 태도조사,노동관계법에 대한 대책수립 등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까지의 서구기업의 인사관리는 반응적(reactive)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반응적 인사관리란 조직 내에 필요성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만 인사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반응적 인사관리에서는 인사관리가 기업전략의 일부가 될 수 없으며, 라인 관리자는 인사문제를 자신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사부서에 속한 전문가의 문제로 치부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인적자원관리(HRM)가 기업의 이윤증대에 기여하고 타기능수행에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 인식된 것은 1980년에 이르러서이다. 오늘날 인적자원관리는 종래의 전문화되고, 단독적인 기능으로부터 전환되어 인적자원과 라인 관리자가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비교우위를 획득하고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사관리의 발전과정 -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 기업에서 인사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된 계기는 인력의 무제한적 공급의 시대가 끝나고, 유능한 인재의 공급과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되는 1975년 무렵으로 볼 수 있다. 무제한적인 노동공급으로 특징되는 산업화 초기에는 노동공급이 노동수요를 초과하는 시기로서 기업체에서는 인사관리를 필요악으로 보거나, 인건비를 감축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인사기능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인사과가 아예 원가관리부 소속으로 되어 있던 대기업도 상당수 있었다. 그 후 70년대 중엽 산업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수출이 급속히 신장되면서 해외건설과 무역 관련 인력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으며, 노동수요가 노동공급을 초과하는 제한적 노동공급의 시기를 맞이하면서 우리나라 기업은 인력의 확보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전담하는 부서로서 인사관리부서의 위상이 강화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기업에서 인사관리부서가 비로소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의 인사관리를 확보나 유지관리에만 치중해왔고 경력개발제도(CDP) 같은 개발관리는 등한시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인사관리를 아직 대응적 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선행적 관리(proactive management)와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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